HONGIK UNIVERSITY

DEPARTMENT OF CHEMICAL ENGINEERING

[Did it 캠페인 #8] 홍익대학교 오명숙 교수 3/3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0-09-02|
  • 조회수 : 563
공지사항 목록의 제목에 해당하는 글내용을 보여주는 테이블입니다

더 가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_

Q. 미국 UC Berkeley를 졸업하고 미국 MIT 대학에서 화학공학 박사 학위를 받으신 걸로 압니다. 화학에 매력을 느끼신 이유는 무엇이고, 미국 유학을 선택하신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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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이 아니라, 온 가족이 함께 떠난 이민이었습니다. 예비고사를 2주 앞둔 고3 때였죠. 곧바로 대학에 진학할 수가 없어서 언니와 함께 영어를 배우며 인형공장에 다니게 되었어요. 옆에서 함께 일하던 금발의 고3 아르바이트생이 공대에 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해서, 우리나라에서 의사를 꿈꾸던 제게 막연하게 공대라는 세계에 대해 생각하게 해 주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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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첫 해, 우리 오 남매와 어린 사촌 동생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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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몇 달을 지내고 대학에 입학하니, 공부가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그전에는 어머니의 자랑이 되고 싶어 무조건하던 공부였지만, 그때부터는 여러 아르바이트를 병행해야 함에도 힘든 줄 모를 만큼 모든 공부가 스스로 재미있게 느껴졌어요. 수학과 화학을 잘하던 저에게 주변에서 공대를 추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까지도 공학에 대해 잘 알지 못했지만, 화학공학에 관련한 모든 과목이 제가 잘할 수 있는 공부라는 걸 알게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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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학생들을 위해 강의를 할 때도 즐겁다고 느낄 만큼 공학은 제게 재미있는 공부입니다. 화학공학을 선택한 후, UC Berkeley에 편입하고, MIT에 가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습니다. MIT에 합격해서 어머니가 무척 자랑스러워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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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 대학원 시절, (오) MIT 박사학위 수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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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미국 재학 시절과 근무 시절, 특히 기억에 남는 분이 계신가요?

많은 분이 계시지만, 먼저 박사과정 지도교수님이셨던 Jack Howard를 꼽고 싶습니다. 이제 막 대학원에 진학한 1학년 학생이었던 제게는 너무나 높은 분이어서 처음 뵐 때는 정말 긴장을 많이 하였는데, 막상 뵙고 나니 너무나 따뜻한 분이셨고 학생들과 대화도 잘하시고 필요할 때마다 도움을 아끼지 않으셨던 분이셨지요. 학생의 부족한 면을 다그치기보다는 감싸주고 더 크게 격려해주셨습니다. 제가 Howard 교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 그분의 나이가 제가 교수가 된 나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교수님은 이미 학문적으로 그 분야에서 명성이 높은 분이었고 성숙한 모습으로 학생들을 대해 주셨기에 되돌아볼수록 존경하는 마음이 더 커진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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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한국에 와서 아이의 사고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셨을 때는 장문으로 된 3장의 편지를 보내 주셔서 큰 위로를 받았던 일도 있습니다. 후일 미국에서 선생님 부부와 식사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기회가 있었는데, 그것이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자리가 되어 지금도 마음이 아픕니다. Jack Howard 교수님은 제가 교수로서 학생들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고 어떤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지 심어주신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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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명을 꼽자면 직장 동료였던 Mary Singleton이겠죠. 제 첫 직장은 국가연구소였는데, 근무연수에 따른 남녀 급여에 차이가 있었습니다. Mary는 연구소 내 여성단체를 통해 적극적으로 시스템에 도전하여 문제를 제기하는데 주요 역할을 했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고 여성 과학기술인들이 겪는 차별을 현실적으로 인지하게 되었죠. 국내에 들어와서도 제가 그런 부분을 문제로 인식하고 개선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할 수 있었던 계기를 만들어 준 고마운 동료입니다. 지금도 학회를 통해서도 만나고 있고, 소식도 자주 왕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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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국내 대학교수로 부임 당시 작은 해프닝이 있었다고 알고 있는데,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총장님이 출근 첫날 앞뒤로 빼곡히 적혀 있는 제 임용에 대한 반대성명서를 보여주시더군요. 후보가 된 사람 중에 더 나은 사람이 있지 않겠느냐는 내용과 여성 교수가 불편하다는 내용 등이었습니다. 남자 교수가 임용될 당시에는 있지 않았던 일이기에 당황한 것도 사실이었지만, 나를 모르는 사람이 나를 평가한 내용이었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막상 반대하셨던 교수님들도 출근한 날부터 따뜻하게 식구로 맞아주셨고, 1년 후 동료 교수 평가도 다들 선입견 없이 좋게 해주셔서, 지금은 그때 왜 반대를 하셨냐고 농담을 건넬 정도의 추억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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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분들도 자신의 분야에 여성이 오는 게 처음이라 불편하고 어색할 뿐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죠. 덕분에 조금 앞서 걷고 있는 제가 그 사회 분위기를 바꿔주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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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자신만의 강점을 꼽는다면 무엇일까요?

저의 강점은 일단 포기를 잘 안 한다는 것입니다. 연구할 때도 그렇지만, 내가 해야 되는 일이라면 조금 나한테 맞지 않는 일일지라도 끈기 있게 해내곤 합니다. 한국공학교육학회 회장도 그렇습니다. 제가 활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회장직을 맡은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저는 앞에 나서는 활동을 불편해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면 도전하게 되고, 도전했으면 성실히 수행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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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공학 분야 여성 선배로서 제가 받은 혜택에 대해 후학들에게 돌려줘야 할 의무감을 가지고 있으며, 늘 개인의 이득보다는 공공의 이익을 중시하여 공금이라면 동전 하나 허투루 써본 적이 없는 마음가짐이 저의 강점이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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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연구자로서, 후학 양성에 힘을 쏟는 지도자로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은퇴를 한 학기 앞두고 연구실을 정리하는 중이지만, 계속하여 저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봉사할 생각입니다. 공학교육에서 기본이 되는 수업 설계, 학습 목표, 평가에 대한 워크숍 등에 꾸준히 참여할 예정이며, 한국공학교육학회 회장으로서 공학교육 연구를 활성화하여 연구에 의해 증명된 교육방식의 변화를 확산하고자 합니다. 또한,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위셋, 공학교육학회 등을 통한 여성의 이공계 참여 확대를 위한 활동도 계속 이어갈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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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위셋 자명종(자신감을 주는 명언 종착지). 마지막으로 어려울 때 힘을 주는 명언, 존경하는 분이 해주신 말씀 한마디를 덧붙여 주십시오.

“생이 있는 한 희망은 언제든지 있다. - 스티븐 호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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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하대 총장을 지내셨던 최순자 교수님이 제게 “좋은 학생들에게 좋은 교수가 되는 건 의미가 없다. 그렇지 않은 학생들에게 좋은 교수가 돼라.”라고 하신 말씀을 늘 마음속에 새기고 학생들을 대해 왔습니다. 내 수업을 선택하는 학생들의 대부분이 우수한 학생들이어서 운 좋은 것으로 생각하다가 이 말씀을 듣고 나를 피하고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학생들에게도 조금 더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교수의 조그마한 관심이 학생들을 크게 바꿀 수 있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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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변화가 비록 미비한 것이라도,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세상에 도움이 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저는 그것이 무엇이든 늘 열심히 해나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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